잃어비린 용서

난 네가 그렇게도 꽉 잡고 있는 것이
섞은 동아줄이길 바란다.
너의 차가운 이성으로 잘라낸 많은 것들이
또한 너의 살점이길 바란다.
 
네가 끊어 낸 인연들,
베풀었다던 너의 온정들이 모두 함께,
한겨울 차갑게 젖어있는 담요이길 바란다.
 
나는 미움보다 잊음을 택했기에
기억할 수 없어서, 용서 할수도 없다.
너가 받아야 할 용서가 어디에 있는지 나는 모른다
너 하나 용서 해주기 위해 긴긴 밤을
미움이라는 가시를 품고 있을 순  없었다.
 
저 광야 사막 어딘가에 묻어 버렸으니,
넌 다시 그 길을 되돌아가보렴.
어디선가 널 기다리고 있는 가느다란 가시
그 하나가 나무가 되어,
독이 든 열매를 맺었을 지.
또는 저주 받은 문둥이 처럼 반쯤 썩은 나무가지가 되어
어느 샘물에 떨어져
쓴 물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구나.
 
미안하다
아무리 기억하려해도
너에게 무엇을 용서해 주어야 네 맘이 편할지
그게 무엇 때문이었는지,
정말이지 기억이 나질 않는구나

뜻밖의 계절

갑자기 불어온
가을 바람에 나는 쫓겨 다녔다.
아무리 숨으려 해도
그는 놀랄만큼 나를 빨리 찾아내었다.
막상 그를 맞닥들여 본다해도
딱히 할 말이 있거나,
멱살잡고 흥분할만큼
서로에게 유감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머리카락을 흩을 수도 없었던
가을 바람이
나 조차도 찾지 못하게 묻어놓았던
그 자리를,
묘비만 남겨진 그리움의 자리를
잘도 찾아 내었다.
나는 곧 눈물을 흘렸다.
울다보니 서러워졌을 뿐,
이유는 없다.

흔적 u

곧 돌아온다던 그이의

발자국 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밤새 왔다간 흔적도 이제는 찾아지지 않는다.

서글피 울어도 위로는 없다, 희망도 없다.

슬픔도 없다, 아픔도 없을 것이고,

그리움은 더더욱 필요없는 것이 되었다.

넌 갔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아쉬움도 없으니, 그냥 훨훨 날아가라.

그저 더이상 바랄 수 없는 그곳에서

너만은 조금, 후회 하기를..

내 사랑은 끝났지만,

너만은 끝끝내 털어내지 못한채

품고 살아 가기를..

청기백기

난 서글퍼 울었다.
다시는 나를 찾지 않을 거라는 그 말이
사형선고가 아니고 뭔가
넌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고 했다.
후회 되더라도
내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도
단호 했지 뭐니
6개월도 못 버틸 것을 상상도 못했겠지..
더욱 놀라운 것은 오히려 살판난 것은
나란 말이지..
그러니까
뚜껑은 열어봐야 하고,
장독은 깨봐야 아는가 보다.
텅빈 것이 누구 것 일런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물은 그릇을 닮는다

물은
그릇을 닮는다
국물은 부엌을 닮고
우물은 마을을 닮는다
강물은 언덕을 닮고
바다는 대륙을 닮고
눈물은
인간을 닮는다.

-1990.7 -

1910년, 아무도 가지 못한 땅

모두가 실패한 삶이라고 했고 헛된 꿈이라고 했다.
무모한 도전이라 했고 이루어지지 않을 소망이라고 했다.
그 길의 끝에는 황무지 길 뿐이며 척박한 땅이라고 누군가 속삭였다.
주님은 이 순간에도 응답이 없다.
살아도 살 소망이 없었고, 죽음조차 따뜻하게 느껴질만큼 나의 손과 발은 너무도 지쳐버렸다.
어머니가 말 했던가. 나의 아버지가 그랬던가. 왜. 헛된 꿈을 꾸냐고.
나의 한숨은 내쉬는대로 고드름이 되어 내 가슴을 찌른다.
드리운 봄 볕, 꽃 향기에도 거친 숨이 쉬어진다.
2.
아버지, 이제는 그만 잠들고 싶어요.
손가락 사이로, 희여져버린 머리카락이 한움쿰 잡히네요.
육신마저도 남이 되어버린듯 해요.
설움마저도 노래가 되려나봐요.
사랑의 속삭임은 귓전에만 울릴 뿐, 사방엔 기적소리만 들려와요.
어머니, 나의 어머니, 어머니의 젖무덤이 그리워요.
내 입을 한껏 채우고도 남는 어머니의 풍성한 사랑이 너무도 그리워요.
오늘 , 하루는 너무도 빨리 지나갔습니다.
옷자락에서 바람 냄새가 나고 있어요.
고국에 서신을 보내고, 어언 3개월이 지났어요.
저의 소식이라도, 전하고픈 마음에 한껏 기쁜 마음을 모아서 편지를 썼드랬어요.
평안하신지요.